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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에 가면 다들 영양제 박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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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건강만큼은 자신 있었습니다. 남들이 여기 아프다, 저기 불편하다 할 때도 '나는 아직 괜찮은데' 했어요. 그런데 올해 들어 여기저기 몸이 불편해지니, 그런 말도 함부로 할 게 아니더라고요. 예전에는 손목이 시리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손목이 어떻게 시리지? 그냥 아프다는 뜻인가? 요즘은 설명을 안 해줘도 압니다. 가끔은 그것 때문에 잠까지 설치니까요. 남의 말 못 알아듣던 걸 이렇게 몸소 배웁니다. 화장실은 또 왜 이렇게 자주 가고 싶은지요. 다녀온 지 얼마나 됐다고 또 가고 싶습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자꾸 그러니 은근히 신경이 쓰여요. 오히려 그 악명 높은 핫플래시는 나름 견딥니다. 하도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각오를 단단히 했거든요. 그런데 손목이 시릴 거라는 말은 못 들었습니다. 더울 준비는 했는데, 시릴 준비까지는 못 한 거죠. 이러니 몸에 좋다는 말이 전과 다르게 들립니다. 예전에는 누가 뭘 먹고 좋아졌다 해도 "그래?" 하고 말았는데, 요즘은 저도 모르게 묻습니다. "그거 이름이 뭐라고?" 건강에 자신 있다던 사람이 이렇습니다. 모임에 가면 마침 물어볼 사람도 많습니다. 피곤하다는 말 한마디에 영양제 이름이 줄줄 나오고, 서로 먹는 것을 비교하다 보면 다들 웬만한 전문가 못지않아요. 이름도 어려운 성분을 어쩜 그렇게 잘 외우는지. 기억력에 좋다는 이야기를 할 때는 일단 믿음이 갑니다. 저도 웃으며 듣다가 어느새 제품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나를 생각해서 알려주는 마음이 고맙고, 도움이 됐다는 말에는 솔깃하고요. 남들은 저렇게 챙기는데 나만 너무 자신만만했나 싶기도 합니다. 그러다 문득 생각해봤습니다. 내 몸에 무엇이 필요한지는 아직 잘 모르는데, 살 것부터 늘어나고 있는 건 아닐까. 몸을 챙겨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인데, 영양제 이름만 열심히 외우고 끝낼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이번에는 무엇을 더 먹을지보다, 요즘 내 몸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부터 알아보고 싶어...

이제 좀 쉬려는데, AI까지 따라가려니 숨이 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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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고, 가족 챙기고, 필요한 것들을 배우다 보니 어느새 오십을 훌쩍 넘겼네요. 이제는 조금 속도를 늦추고, 좋아하는 일에도 시간을 쓰고 싶었어요. 그런데 AI까지 따라가려니 더 숨이 찹니다. 참 편리하긴 해요. 어려운 내용을 풀어주고, 혼자 오래 붙잡고 있을 일도 도와주니까요. 저도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문제는 하나를 겨우 익히고 나면 또 새로운 것이 나온다는 거예요. "아직도 그렇게 하세요?" 네, 아직 그렇게 합니다. 그것도 겨우 배웠거든요. 웃고 넘기다가도 슬쩍 마음이 급해져요. 남들은 벌써 저만큼 가 있는데 나만 제자리인가 싶어서요. 편해지려고 배우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공부할 것만 늘어나 있네요. 그런데 혹시 나만 이런가 싶어 자료를 찾아봤더니, 숫자가 이렇더군요. "AI 기술 발전 속도가 너무 빨라 따라가기 어렵다"는 불안을 느낀 적이 있다 — 68.0%. 세 명 중 두 명입니다. "업무에 필요한 지식과 정보 습득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부담을 느낀다는 응답도 67.2%였고요. 저만 숨이 찬 게 아니었습니다. 나만 빼고 다들 천재가 된 걸까요 화면을 열면 대단한 사람들이 줄줄이 나옵니다. 누군가는 AI로 영상을 뚝딱 만들고, 누군가는 혼자서 여러 사람 몫의 일을 해내죠. 투자도 잘하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집까지 근사하게 꾸미는 사람들. 처음에는 감탄하면서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요. '나는 오늘 뭘 했지?' 분명 나름대로 바쁘게 보냈는데, 갑자기 별일 안 한 사람이 됩니다. 배우고 싶어서 봤는데 자신감이 줄어 있는 날도 있고요. 설명이 어려우면 더 그래요. 이해하려고 다른 설명을 찾아봤더니, 거기에도 모르는 말이 나옵니다. 프롬프트가 뭔지 알 만하니 에이전트가 나오고, 이제는 자동화까지 알아야 한다네요. 하나를 알아보러 들어갔다가 모르는 것만 잔뜩 발견하고 나오는 셈이죠. 그런데 제가 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다른 사람이잖아요. 기술에 밝은 사람, 투자를 잘하는 사람, 살...

존엄사, 82%가 찬성했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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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존엄사'라는 말을 뉴스에서 자주 보게 됩니다. 예전 같으면 제목만 한번 보고 지나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일까요. 요즘은 이런 이야기가 그냥 지나쳐지지 않습니다. 오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끔은 이런 생각도 하게 됩니다. 나는 마지막까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을까. 그리고 정말 마지막 순간이 왔을 때, 내 삶에 관한 결정을 어디까지 내가 할 수 있어야 할까. 그런 생각으로 자료를 찾아보다가 숫자 하나를 봤습니다. 82%. 2022년 한국리서치가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에게 물었을 때, 조력존엄사 입법에 찬성한다고 답한 사람이 82%였습니다. 열 명 중 여덟 명이 넘습니다. 60세 이상에서는 86%였습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사람들 생각이 거의 비슷한가 보다.' 그런데 찬성하는 이유를 들여다보다가 한참 멈췄습니다. 같은 칸에 '찬성'이라고 표시했는데, 사실은 서로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먼저, 존엄사라는 말부터 조금 정리해야 했습니다 저도 이번에 자료를 찾아보면서 알았습니다. 우리가 평소 '존엄사'라고 한꺼번에 부르는 것 안에는 서로 다른 이야기가 섞여 있습니다. 한국에서 이미 가능한 연명의료중단 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치료 효과 없이 임종 기간만 연장하는 연명의료를 하지 않거나 중단하는 것입니다. 반면 흔히 '조력존엄사' 또는 의사조력사망이라고 부르는 것은 의사가 도움을 제공하고 최종적인 행위는 환자 본인이 하는 형태입니다. 그리고 의사가 직접 생명을 종결하는 안락사 는 또 다른 개념입니다. 현재 한국에서 제도적으로 허용되어 있는 것은 연명의료중단 입니다. 보건복지부가 설명하는 현행 연명의료결정제도도 환자의 의사를 확인해 일정한 요건 아래 연명의료를 유보하거나 중단하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조력존엄사에 관한 법안은 국회에 올라와 있습니다. 여기서 날짜 하나는 정확히 짚고 가는 게 좋겠습니다. 「조력존...

집은 1등인데 의지할 사람은 꼴찌입니다 — 한국과 미국 중년은 무엇을 두려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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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한국의 중년은 나이 드는 일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미국에 살면서 가끔 궁금했습니다. 여기 사람들도 우리처럼 늙는 것을 두려워할까. 그렇다면 무엇이 가장 두려울까. 마침 비슷한 시기에 미국과 한국에서 관련 조사가 나왔습니다. 두 결과를 나란히 놓고 보니 꽤 흥미로웠습니다. 같은 것도 있었고, 뜻밖에 전혀 다른 것도 있었습니다. 1. 양쪽 모두에게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질문은 간단합니다. 나이 드는 것이 왜 두려우십니까? 미국에서는 올해 4월 성인 10,015명에게 물었고, 한국에서는 2024년 전국의 성인 4,254명을 조사했습니다. 두 나라의 1위는 같았습니다. 미국은 장기요양이 필요할 만큼 건강이 나빠지는 것 이 39%, 한국은 건강 상태 악화 가 5점 만점에 3.80점으로 가장 높았습니다. 양쪽 모두 돈보다 건강이 먼저였습니다. 조금 의외였습니다. 노후 이야기만 나오면 우리는 늘 돈부터 계산하잖아요. 은퇴자금은 얼마가 있어야 하는지, 집은 있어야 하는지, 생활비는 얼마나 드는지. 그런데 정작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통장 잔액이 아니라, 내 몸을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되는 일이었습니다. 여기까지는 두 나라가 같았습니다. 2. 그런데 그다음부터 달라집니다 1위 아래의 항목들을 보니 두 나라의 차이가 드러났습니다. 미국 목록에만 있는 것 한국 목록에만 있는 것 인지 저하·치매 32% 외모 변화 5위 독립성 상실 30% 노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 6위 장기요양 비용 30% 사회적 소외 7위 미국의 걱정은 한 문장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내가 나를 책임질 수 있을까. 기억이 흐려지는 것, 혼자 살 수 없게 되는 것,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일상을 꾸리지 못하게 되는 것. 모두 독립성을 잃는 문제로 이어집니다. 한국의 목록에는 다른 걱정이 들어 있습니다. 외모가 변하는 것, 다른 사람에게 노인으로 보이는 것, 사람들 사이에서 밀려나는 것입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걱...

튀지도 초라하지도 않게 - 50대 가을 결혼식 하객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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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첩장을 받았습니다. 날짜를 확인하고, 축의금을 얼마 할지 정하고, 같이 갈 사람이 있는지 보고. 여기까지는 십 분이면 끝납니다. 그리고 옷장 앞에 섭니다. 여기서 막힙니다. 축의금은 정했는데 입을 옷이 안 정해집니다. 옷은 있는데 그날 입을 옷은 없어요. 가을은 결혼식이 몰리는 계절입니다. 한 달에 두세 번 있을 때도 있죠. 그때마다 이 자리에 다시 섭니다. 사실 저는 「하객룩」이라는 말을 별로 안 좋아합니다. 뭔가 급조된 느낌이 들어서요. 그런데 다들 그렇게 부르고, 저도 딱히 대신할 말을 못 찾았습니다. 그러니 오늘은 그 말을 쓰겠습니다. 대신 왜 하필 이 옷이 어려운지부터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옷을 30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옷 쪽에서 봅니다. 1. 결혼식 옷이 어려운 진짜 이유 결혼식 하객룩이 어려운 건 우리가 센스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조건 자체가 좁습니다. 튀면 안 됩니다. 그날의 주인공은 따로 있습니다. 하객이 눈에 먼저 들어오면 그건 잘못된 겁니다. 그런데 초라해도 안 됩니다. 축하하러 간 자리에서 대충 입고 온 사람처럼 보이면 그것도 실례가 됩니다. 이 두 조건 사이의 폭이 아주 좁습니다. 평소 옷 고르기와 완전히 다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다른 게 하나 더 있습니다. 사진이 남습니다. 저녁 모임이나 동창회는 그날로 끝나요. 그런데 결혼식 옷은 남의 앨범에 몇십 년 들어갑니다. 그리고 사진에는 옷만 찍히지 않습니다. 그날의 자세와 표정이 같이 찍힙니다. 불편한 옷을 입으면 그게 사진에 남습니다. 그것도 몇십 년 동안요. 나이가 들수록 이 폭은 더 좁아집니다. 젊을 때는 좀 튀어도 "젊으니까"로 넘어갔습니다. 잘못 입어도 다음에 만회할 기회가 있었고요. 50대가 되면 다릅니다. 너무 젊게 입으면 어색해 보이고, 무난하게 가면 나이 들어 보입니다. 그 사이가 생각보다 좁습니다. 2. 하객룩 실수는 대개 옷에서 나지 않습니다 제 실패담부터 하겠습니다. 지인의 딸 결혼식에 갔습니다. 저는 검...

강아지가 산책을 조르는데 저는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 오십에 온 우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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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오후였습니다. 소파에 잠깐 누워 있었어요. 산책 시간이 됐고, 강아지가 조르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하던 일입니다. 목줄만 채우면 되는 일이고요. 그런데 못 일어났습니다. 일어나기 싫었던 게 아닙니다. 몸이 안 움직였습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결국 소파에서 바닥으로 내려와, 기다시피 해서 폰을 집었습니다. 그리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제니퍼? 난데. 너 예전에 말했던 그 상담 테라피스트 연락처 좀 줄래?" 이상하게, 그 말을 꺼내자마자 몸이 조금 풀렸습니다. 그리고 용기가 났어요. 그날이었습니다. 제가 지금 건강하지 않다는 걸 인정한 날이요. 그렇게 상담을 시작했습니다. 1. 저는 우울할 이유가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저는 제가 가라앉아 있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럴 만하다고 생각했어요. 그 몇 년이 이랬습니다. 아들이 커서 자기 길을 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오래 하던 사업을 정리했습니다. 대형 체인과 백화점을 상대로 대량생산을 하던 일이었는데, 어느 순간 이걸 계속 못 하겠다 싶은 날이 왔거든요. 그만두고 끝낸 게 아니라 방향을 틀었습니다. 친환경 소재로, 온라인과 쇼를 중심으로 파는 미니멀 컨셉의 브랜드를 준비했습니다. 규모는 훨씬 작아졌지만 그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려고 집도 정리했습니다. 일하는 곳 가까운 작은 아파트로 옮겼고요. 그리고 이사하자마자 팬데믹이 터졌습니다. 쇼에 한 번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이유가 충분하잖아요. 외로움. 긴장. 공포. 전부 설명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걸 상황 이라고 불렀습니다. 병이라고 부르지 않았어요. 상황은 지나가는 거니까 기다리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즘은 정보가 넘칩니다. 우울증이 뭔지 다들 압니다. 저도 알았어요. 그런데 아는 것과, 그게 내 얘기라고 받아들이는 건 완전히 다른 일 이더군요. 설명이 되면 오히려 더 안 갑니다. 왜냐하면 납득이 되니까요. 이만하면 우울할 만하지, 하고 넘어가게 됩니다. 2. 우울증은 슬픔...

니트는 압축팩에 넣지 마세요 — 30년차 디자이너의 가을 옷장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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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금 미국에 있는데 아직 한여름입니다. 한국은 곧 아침저녁이 서늘해지겠죠. 계절이 바뀔 때가 되면 결국 같은 일을 해야 합니다. 옷장을 뒤집는 일이요. 옷장을 열면 앞줄에는 여름 내내 입던 얇은 셔츠들이 걸려 있고, 뒷줄 어딘가에 작년 가을에 넣어둔 것들이 있습니다. 어디에 뭘 넣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저는 옷을 30년 만들었습니다. 디자이너로 시작해 제 의류 사업을 했고, 시즌이 바뀔 때마다 재고를 정리했습니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뺄지 판단하는 게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계절에 제가 제일 많이 받는 질문이 있습니다. "여름옷 어떻게 보관해요?"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제일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이겁니다. 니트는 압축팩에 넣지 마세요. 이유는 뒤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1. 재고 정리는 잘했습니다. 제 옷장이 문제죠 일할 때 시즌 교체에는 순서가 있었습니다. 먼저 판매 숫자를 봤습니다. 이번 시즌에 뭐가 얼마나 나갔는지. 그다음 다음 해 시즌 트렌드를 봤습니다. 내년에 이게 통할 것인가. 재고 정리 판단은 그 두 가지를 보고 나서야 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순서입니다. 물건을 먼저 보지 않았습니다. 숫자를 보고, 다음 시즌을 보고, 물건은 마지막에 봤습니다. 그렇게 하면 판단이 쉬워집니다. 이 재킷이 예쁜지 아닌지는 상관이 없거든요. 안 팔렸고 내년에도 안 팔릴 것 같으면 빼는 겁니다. 감정이 들어올 자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집에 와서 제 옷장을 열면 이 순서가 통째로 무너집니다. 숫자가 없습니다. 다음 시즌 예측도 없습니다. 그러니 물건부터 보게 됩니다. 물건부터 보면 이런 생각이 먼저 옵니다. "이건 안 입었지만 비싸게 샀는데." "이건 안 맞지만 정말 예쁜데." "이건 일할 때 입던 건데." 일할 때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생각들입니다. 오래 저는 이게 제가 나약해서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좀 다르게 봅니다. 재고는 상품이고, 제 옷은...